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호른의 따뜻함으로 전하는 격려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어느 날 상담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상담센터를 인터넷에서 찾아 몇 군데 가보아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어떤 질문에도 답을 않던 그는 상담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난 엄마 친구 아들이 젤 싫어요’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더니 ‘엄마 친구 아들은 뭐든 다 잘하거든요!’

 

그의 대답을 들으니 한동안 힘들었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참 많이 힘들었구나’ 하며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그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모님의 기대치를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이 싫어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 같다며 우울해했다. 그러면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호른의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어떤 악기의 소리인지, 무슨 곡인지 궁금해했다.

 

그 곡은 바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K.447 2악장 Romance, Larghetto였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의 호른 주자였던 요제프 로이트게프Joseph Leutgeb를 위해 호른 협주곡 4곡을 작곡했다. 그는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1772~1773년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동행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24살이나 많은 로이트게프는 모차르트의 짓궂은 장난도 격의 없이 받아주고 그의 음악적 새로운 시도도 언제나 응원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곡에 담았다. 그들의 우정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결같았다.

 

<호른 협주곡 1번>의 자필 악보에는 ‘바보 로이트게프’, ‘잠깐 쉬시지’, ‘어이쿠, 이제 끝이군’ 같은 농담도 써놓았고 <호른 협주곡 4번>에선 악보를 빨강, 파랑, 초록, 검정으로 그려 미술 작품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러한 유머와 독창성을 이해해주는 로이트게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호른 협주곡 3번> K.447 2악장은 로이트게프가 잘하는 칸타빌레 주법(선율을 노래하듯 연주하는 주법)의 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겹고 아름다우며 따뜻하게 작곡되었다. 포근하고 편안함을 주는 호른 음색의 특징이 잘 나타난 곡이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 호른 협주곡들이 ‘로이트게프답다’고 했다.

 

 

호른은 달팽이처럼 기다란 관이 구불구불 말려 있다. 공기를 불어 넣는 마우스피스는 관악기 중 가장 작으나 공기가 나오는 벨은 크고, 연주하기 힘든 악기 중 하나이다. 차가워 보이는 금관악기에서 흐르는 호른의 음색은 따뜻함이 봄바람과 같다. 호른이 내는 포근한 음색은 오케스트라에서 두드러지는 악기 소리를 하나로 품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금관 5중주뿐만 아니라 목관 5중주에도 호른이 들어간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의 소리를 하나로 어우러지게 해주는 역할이 호른의 장점이다. 이처럼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중재자 역할과 함께 곡의 리듬을 이끌어나가기도 하고 따뜻한 음색이 돋보이는 솔로 부분을 연주하기도 한다.

 

곡을 몇 번 반복해 듣고 호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중학생 친구는 ‘나랑 좀 비슷하네, 나도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고 노는데’ 하는 거다.

드디어 본인의 장점을 웃으며 말하는 그가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음악을 들으며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장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야 성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객관적인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많은 악기들이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지고 조화롭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가듯, 우리 또한 본인만의 음색으로 자신의 독특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론 주위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모든 주자가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될 수 없듯, 우리 삶 또한 그러하다.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를 통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나아갈 그를 응원한다.

 

“제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과정 중

 

[주요활동]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수상경력]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