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베토벤 – 삶의 불협화음을 조율하는 지혜


‘인간사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같은 사람이 늘 행복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헤로도토스 역사 中-

 

인생은 생각만큼 쉽지도, 순탄하지도 않다. 누구든 살아가며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때를 회상하는 날이 오면 자족(自足)하는 날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걸 보고, 본인 역시 상담이 필요하다고 여겨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수능 후 낙심이 큰 그녀와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자기 이해와 존중으로 나아간다.

 

오늘은 눈물 없이 담담히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만났을 땐 눈도 마주치지 않던 그녀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 닦아낼 때도 있었다.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 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는다. 상담 기간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곡을 다시 듣고자 한다. 그 곡은 바로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String Quartet No. 14 in C sharp minor op. 131)>이다.

 

전체 7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형식적인 면에서 기존의 틀을 깬 파격적인 시도에 모든 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하라는 요구까지 더한다. 보통은 악장과 악장 사이 휴식을 취하며 다음을 준비하고 숨을 고른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 곡에선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일까 아님, 무언가를 의도한 심오한 구성이었을까?

 

전 악장은 주제와 내용이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표현되는 깊이는 베토벤의 음악적 영감을 일관되게 노래하며 복잡한 대위법으로 짜여진 구성을 보여준다.

 


1악장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 에 몰토 에스프레시보

느리고 자유로운 푸가 형식에 3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제1 바이올린이 주요 주제를 제시하고 제2 바이올린은 5도 낮게 응답한다. 이어 비올라와 첼로로 옮겨가면서 푸가는 시작된다. 두 번째 부분은 제1 바이올린이 최초 주제에서 나온 선율을 연주하며 두 번째 동기를 제시한다. 이 주제들이 전개된 후 세 번째 부분으로 들어간다. 최초 푸가 주제를 비올라부터 제2 바이올린, 제1 바이올린, 첼로의 순서로 연주한다. 첫머리와는 달리 다른 성부는 연속된 8분음표 선율로 장식한다. 곡은 짧은 코다를 지나며 조성과 박자, 빠르기를 변화시켜 그대로 2악장으로 이어진다.

 

2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이 악장에 나오는 모든 선율은 주제에서 유래하여 발전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부주제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주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3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 아다지오

11마디로 된 짧은 악장으로 6마디의 알레그로 모데라토에 이어지는 5마디의 아다지오는 제1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카덴차 풍의 빠른 악구가 있으며 형식은 완전히 자유롭다.

 

4악장 안단테 마 논 트로포 에 몰토 칸타빌레

전 악장 중 가장 장대한 악장이다. 32마디로 이루어진 주제와 6개의 변주곡, 그리고 코다로 구성된다. 명랑하고 환희가 가득한 느낌으로 주제는 주로 제1, 제2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8마디 주제의 반복과 다음 8마디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2부 형식이 32마디의 주제를 만든다. 이어지는 제1변주는 같은 속도이지만 저음과 고음에서 교대로 반복되며 단아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제2변주는 명쾌한 리듬의 곡이고 제3변주는 첼로로 시작되는 주제가 비올라에서 제1 바이올린으로, 다시 제2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카논 풍의 변주로 아름다운 대화한다. 제4변주는 제1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제의 자유로운 변주로 시작된다. 제5변주는 싱커페이션이 많고 다성적인 처리를 한 변주이고, 제6변주는 주제의 원형에서 크게 떨어진 선율로까지 변화한다. 곡은 제1 바이올린의 긴 트릴을 거쳐 코다로 들어가며 주제의 원형에 가까운 알레그레토와 아다지오 부분이 교대로 되풀이된 후 5악장으로 이어진다.

 

5악장 프레스토

첼로가 힘있게 주제 동기를 제시하며 한 마디 동안 모든 악기가 쉰 후, 제1 바이올린이 경쾌하게 스케르초의 주요 주제를 연주한다. 제2 선율의 발전으로 두 번째 스케르초 형태가 만들어지고 곡은 트리오로 들어간다. 트리오는 두 개의 선율을 소재로 구성된다. 곡은 스케르초의 주부로 바뀌어 다시 이 트리오를 재현하며, 제1부로 돌아간 후 코다로 들어간다.

 

6악장 아다지오 콰지 운 포코 안단테

3악장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악장으로 보기 힘들며, 피날레의 서주부로 간주된다. 2부 형식의 풍부한 선율을 지닌 악장이다. 비올라의 서글픈 카바티나 풍의 선율은 프랑스 민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7악장 알레그로

이 곡 중에서 유일한 소나타 형식이다.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네 마디의 강력한 도입부 후에 제1 바이올린이 경쾌한 제1 주제를 제시한다. 제1 주제에 이어 나타나는 또 다른 주제는 1악장 푸가 주제와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 제1 주제가 나타난 뒤에 제2 주제가 제시된다. 바로 발전부로 들어가서 도입부와 제1 주제에 의한 전개가 힘차게 시작되고 새롭게 여유 있는 선율을 더해간다. 재현부는 도입부에서 확실히 재현되며, 제2 주제 재현 후에 이 주제에 의해 자연스럽게 코다로 들어간다. 도입부와 제 1주제를 다시 크게 재현시키고, 마지막에는 6마디의 포코 아다지오를 삽입하여 강렬한 세 개의 화음으로 화려하게 곡을 마무리한다.


 

베토벤 만년의 깊은 사색을 표현하고 부드러운 서정과 엄격한 정신이 두드러져 보이는 이 곡은 인간의 내적 갈등을 담으려는 진심이 보인다. 4개의 악기 중 어느 한 악기가 주가 되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듯 균형을 이루며 연주된다.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 속에서도 끝까지 연주할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7악장까지 쉬지 않고 연주하다 보면 현은 늘어나고 집중력도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조율하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시련이나 예측 불가한 상황은 언제나 올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음악에 고마움을 전하는 고3 여고생.

 

제1 바이올린이 이상과 목표를, 제2 바이올린은 현실의 불안을, 비올라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첼로는 듣는이의 솔직한 마음을 대신 노래하며 상처받은 영혼을 다독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며… 그녀는 차분히 말한다.

 

필요할 때만 활을 당기는 것이다. 활을 늘 당긴 상태로 두면 활이 부러져 정작 활이 필요할 때는 쓸 수 없게 된다. 늘 진지하기만 하고 긴장을 풀어주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며 최고보다는 최선을 위해…. 삶의 균형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다짐한다.

 

견뎌내고 끝까지 노력해나가는 것에 대해 귀함을 전하는 이 곡은 그녀에게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전한다. 예기치 않고 다가오는 삶의 불협화음을 조율하는 지혜를 얻었다는 그녀의 미소는 전보다 더 환해졌다.

 

우리 인생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 몫의 행운에 불행이 섞이지 않은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주한 상황에서 인내를 배우게 되는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걸린다.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지내자.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사 中-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