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자의 길: 기술, 협업 그리고 표현 " (1-3)

반주: 공동 창작과 해석을 통한 예술적 소통


※ 반주자의 연습법: 곡 분석과 파트너에 대한 이해

 

“반주는 결국 관계의 예술이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반주자의 연습 방식에 그대로 적용된다. 많은 이들이 반주자는 “반주만”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그 모든 유연함은 결국 철저한 사전 준비에서 비롯된다. 사실 반주자이기전에 피아니스트이기에, 독주곡을 연습하고 치는 게 훨씬 자유롭고 더 편하다.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음악흐름을 변경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해도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연주하기 위한 연습은 독주자의 연습과는 다르다. 반주자는 언제나 두 사람의 음악을 상상하며 연습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반주자가 곡을 분석하고 파트너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 구조부터 읽어라 – 한 발 앞선 시선 

반주자는 곡의 전체적인 흐름과 구조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해야 한다. 특히 리허설 시간이 짧거나 공연 당일 만나게 되는 경우, 전체적인 곡의 맥락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는 연주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 이 곡의 형식은 무엇인가?

√ 감정의 흐름은 어디서 전환되는가?

√ 클라이맥스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준비되는가?

 

이러한 분석은 연습 초기에 ‘지도’처럼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파트너의 해석이 다가와도 그 속에 나를 유연하게 놓을 수 있다.

 

◇ 상대 파트를 ‘읽는 연습’을 하라 

많은 반주자들이 피아노 파트만을 중심으로 연습한다. 하지만 진정한 반주자는 파트너의 파트까지 자기 악보처럼 익히는 사람이다. 가사가 있는 곡이라면 그 언어를 충분히 이해해야 하며, 악기 반주라면 해당 악기의 연주 특성과 음역, 호흡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실제로 반주전공 대학원을 가면 독일어와 프랑스어 수업을 배우게 되는데, 성악반주를 하려면 이처럼 언어를 기본으로 읽을 수 있어야한다.

 

반주를 하면 다음과 같은 여러 연주자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클라리넷 연주자는 루바토를 즐기고,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비브라토와 활의 방향으로 감정을 더 표현하고 싶어한다. 어떤 바리톤은 저음에서 울림을 살리고 싶어 하며, 어떤 소프라노는 고음에 감정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잘 쳐도’ 두 사람의 음악은 따로 놀게 된다.

 

연습 중 질문해보자.

 

√ “여기선 숨을 쉬고 싶으세요?”

√ “이 프레이즈에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가 있으신가요?”

√ “이 마디는 조금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이러한 대화는 악보 너머의 음악을 만드는 시작이 된다.

 

◇ 혼자서도 ‘듀오처럼’ 연습하라

혼자 연습하는 시간에도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닌, 우리를 상상하는 일이다. 피아노에만 집중해서 연습하면, 무대에서 파트너와의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반주는 ‘두 사람의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기에, 늘 상대의 선율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연습해야 한다.

 

√ 상대의 멜로디가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서 숨을 쉴지를 피아노로도 느껴보자.

√ 페달링이나 템포 설정은 상대의 호흡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다듬자.

√ 클라이맥스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는 감정의 시간을 연습 속에 준비하자.

 

이런 연습이 되어 있다면, 리허설이 짧더라도 무대에서의 음악은 완성도 있게 흘러간다.

 

◇ 해석의 언어를 준비하라

반주자는 음악적 ‘소통자’이기도 하다. 단순히 맞추는 연주자가 아니라, 상대의 해석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나의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석을 ‘언어화’할 수 있는 훈련이 중요하다.

 

√ “이 구간은 좀 더 수평적인 흐름으로 갈까요?”

√ “여기선 약간 속도를 밀면서 고조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이 음형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처럼 자신만의 언어로 음악을 설명하고, 파트너의 언어도 해석할 수 있어야 진짜 ‘같이’ 음악할 수 있다.

 

◇ 파트너별 ‘연습 노트’를 만들어라

같은 곡이라도 파트너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기에 실력 있는 반주자일수록 파트너별 노트를 정리해둔다.

 

√ 자주 틀리는 마디

√ 특별히 요구한 해석 포인트

√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프레이즈

√ 숨 쉬는 위치, 호흡의 길이

√ 템포 및 리듬의 습관적 버릇 등

 

이러한 데이터는 다음 리허설과 무대에서 큰 자신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또는 동의를 구하고 녹음을 해도 괜찮다. 반주는 결국 ‘기억의 예술’이기도 하다.

 

◇ 마무리하며

반주의 연습은 단순히 곡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연습하는 일이다.

악보를 보고 상대를 상상하고, 상대를 만나고 곡을 다시 보고, 다시 혼자 연습하는 이 순환 속에서 반주자는 서서히 '두 사람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잘 듣고, 잘 이해하고, 잘 준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대 위에서 가장 든든한 파트너, 훌륭한 반주자다.

 

 

고유미

대한민국예술신문 예술교육이사

덕원예술고등학교 피아노과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피아노과 졸업, 연세대학교 피아노반주과 석사 최고점 입학, 졸업.

클래식앙상블 엠 이라는 반주전문단체 대표로 있으며 기악반주, 성악반주, 합창반주, 뮤지컬반주 등 활동영역이 넓으며 전문연주자들과 협업하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