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의 마음 클래식

아르보 패르트 – 음과 음 사이의 공간에서 배운 진정한 사랑의 의미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번듯한 학원 하나 제대로 못 보냈던 아들, 그런 자식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옆집 아들에서 번듯한 가장으로 잘 성장해주었다. 학부모로 학교를 방문하던 날이면, ‘○○의 엄마’라는 애칭은 그녀에게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장신구였다.

 

엄마라는 이름은 자식을 낳는 순간부터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핀다. 마치 자신의 몸과 마음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 역시 사람인지라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겪게 되는 감정의 고리들을 풀지 못하여 때로는 힘든 구간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시쳇말로 사춘기와 갱년기의 대립이라 하듯이 말이다. 오늘은 엄마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깊은 시름에 빠진 분과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전부였던 그녀의 아들, 그런 아들이 성장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왔고, 결혼했다. 속으로는 ‘서운해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들을 빼앗긴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하다고 한다. 아들이 늘 말하던 ‘우리 엄마가 최고야’에서 ‘우리 엄마가 최고의 시어머니야’라는 말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해하고 포용하려 노력했건만, 마음속 파도는 잦아들지 않아 힘겨움을 전하는 그녀.

 

무엇이 진정 아들을 위하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감정의 끈을 이어가고 싶은 그녀에게 함께 들어보자고 말했던 곡은 바로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Spiegel im Spiegel>(거울 속의 거울)이었다.

 

1935년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현대음악 작곡가인 패르트는 복잡하고 현란한 작곡 기법을 사용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점차 단순화시킨 어법의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은 독창적이고 정교하게 구성된 틴티나불리 음악어법에 기초한 음악으로, 라틴어로 ‘작은 종’을 뜻하는 틴티나불리(tintinnabuli)는 교회의 전례나 행렬에서 주로 사용하는 작은 종 또는 종소리를 의미한다. 단순하고 강렬하며 매혹적인 종소리의 울림으로 그는 미니멀 아트 예술가라는 평가와 네오바로크 음악가라는 상반되는 평가를 동시에 받게 된다.

 

아르보 패르트는 작곡가를 뽑는 해가 아니었음에도 1957년 탈린 음악원에 지원하여 예외적으로 작곡과에 입학하게 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당시 소련 정부의 간섭으로 인해 유럽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접하기는 어려웠지만, 스승 하이노 엘러의 도움으로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에서 신고전주의와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12음 기법 등을 공부하게 되었다.

 

1968년 작곡한 피아노,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Credo’는 종교적인 제목 때문에 소련은 금지곡으로 분류하고, 예술 활동에 지속적인 감시와 탄압을 가했다. 이후 그는 8년 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는 데 집중하고, 그레고리오 성가와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음악 같은 형식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단순성, 영적 감수성, 포괄성을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적 특징으로 볼 수 있는데 단순성은 단조로움이 아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축소와 간결함이라 할 수 있다. 종교와 중세음악의 정서가 침묵과 소리를 통해 영적 감수성으로 나타나고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모두 포용하는 포괄성을 말한다.

 

이 곡은 Arvo Pärt의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연주된 작품 중 하나로 ‘거울 속의 거울’은 사물을 그대로 복사하는 거울이 아니라 거울 속의 거울에 섰을 때 반사되는 무수히 많은 대칭을 말한다.

 

단순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곡이 그녀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듯하다. 선율은 끝없이 자신을 비추며 조금씩 멀어졌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무한 거울 속에서 우리는 아들의 행복을 축복하고 싶다는 마음과 빼앗긴 듯한 서운함이 서로를 비추는 모습을 보며 음악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사랑하는 아들을 지지하는 지혜로운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기 조절은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선율 위에서 조화로움으로 표현된다.

 

‘내 역할이 끝난 걸까?’, ‘이제 나는 아들에게 주변 인물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여전히 너의 엄마야. 그리고 지금 새로운 너의 가족을 환영한다.’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아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엉켜버린 복잡한 감정을 걸러내 주는 아름다운 필터의 역할을 해준 음악에 고마움을 전하는 그녀는 조금은 편해 보인다.

 

천천히 흐르는 음들에 마음을 흘려보내며 음과 음 사이의 침묵에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공간임을 배운다. 최소한의 구성요소로 본질적인 음악을 창조하는 패르트의 음악,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순수하고 투명한 음악에서 선물 받은 지혜는 아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확인케 하고 마음속 풍요를 지켜주었다.

 

아마도 내 음악은 모든 색을 담고 있는 하얀 빛과 같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오로지 프리즘만 그 색들을 분리해낼 수 있는데, 이때 이 프리즘은 바로 듣는 이의 영혼이다.

- 아르보 패르트-

 


 

최영민 작가

 

[학력]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경력]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시상]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