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멘델스존 – 원망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는 법
새싹의 성장을 재촉하는 비가 나뭇잎을 격려하듯 토닥인다.
고민이 많은 듯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소문이라도 날까 조심스러워 말하지 못한 일이 있다며 나를 찾아온 것이다.
삼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부모의 말이 곧 법이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막내 남동생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하여 꿈을 접게 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천덕꾸러기의 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시대였지, 막내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시댁에서 쫓겨났을 거야!”라며…. 본인의 존재 의미를 막내아들에게 두며 살아오셨다.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에서나 어떤 결정에서 어머니에겐 아들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귀한 남동생이 지금 많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린다. 창문에 흐르는 빗줄기가 그녀의 마음에 내리듯…. 흙냄새와 풀냄새를 가득 머금은 봄비가 그녀에겐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온기로 뿜어내는듯했다. ‘내가 그동안 유학하지 못한 아쉬움과 원망을 마음속에 담고 있어 동생이 아픈 건 아닌지….’ 자신의 나쁜 마음에 대해 후회가 된다고 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 곡은 바로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의 ‘녹턴 G단조’였다. 그녀의 작품 중 하나뿐인 녹턴 곡은 1838년경 작곡되었고, 쇼팽의 녹턴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녹턴이라는 명칭은 18세기 때 저녁 파티에 주로 연주하던 곡을 일컫는다. ‘야상곡’이라 불리며 밤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낭만적이며 감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파니의 녹턴은 고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에 희망과 열정의 의지가 함께 느껴진다.
파니 멘델스존(1805~1847)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의 누나이다. 그녀 역시 매우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파니가 15살이 되면서 보수적인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펠릭스에겐 음악이 직업이 될 수 있지만, 너에겐 장식품밖에 안 돼!”
당시 여성은 사회생활보다 집안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넘지 못하고 그녀는 평생을 아마추어 음악가로 만족해야 했다. 파니는 부조리에 저항하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정식 데뷔는 포기했으나 좋아하는 음악을 위한 노력은 끈기 있게 도전했다. 동생 멘델스존의 음악 활동을 도우며 그의 이름으로 자신의 몇몇 작품을 출판하기도 했다. 파니는 동생의 음악 창작의 조력자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어 우리가 잘 아는 멘델스존의 ‘무언가’도 누나의 음악적 교감으로 창작되어 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멘델스존 가의 미네르바’라고 불렀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순결을 지키며 시와 지혜, 악기 발명을 주관했던 여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미네르바와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은 가정에서 여성의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나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한 작곡가이자 연주가라고 스스로를 평한 것이다.
멘델스존은 누나이자 소울메이트,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음악적 친구였던 파니의 죽음 후 그동안 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대해 속죄하듯이 그녀의 작품 중 일부를 음악 출판사인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로 보냈다. 파니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음악의 삶을 계속 이어나갔다. 동생 멘델스존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적 메시지를 표현했고 동생의 작품에 관한 전문적인 견해를 피력하며 음악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음악을 듣고 있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인지 쏟아지는 봄비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실컷 울고 나서는 말문을 열었다. ‘파니 멘델스존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동생의 음악적 활동을 도우며 음악적 능력을 발휘했네요….’라며 현실을 원망하기만 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동생이 아픈 게 나 때문은 아닌데 자꾸만 나 때문인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내가 동생을 원망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네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불편한 마음보다는 남은 시간 아픈 동생에게 어떤 보탬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삶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과제를 주는 듯하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더욱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배움, 그리고 깨우침과 마주하게 된다. 음악적 재능이 억압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파니 멘델스존의 음악은 고난을 성장의 기회로 인식하게 해주었다. 현실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자. 오늘 하루도 성장하고 있는 나를 위해 봄비는 그렇게 우리를 토닥인 것이다.
‘내 힘들다!’가 아닌 ‘다들 힘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최영민 작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석사
대구한의대 치유과학과 박사(ABD)
전 대구과학대학출강
법무보호복지공단 대구지부 심리위원
아카데미 예송 대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진행
2024 대한민국 眞心예술대상 수상
저서 '마음이 머무는 클래식' (에듀래더 글로벌 출판사, 2025)
[대한민국예술신문]